칼럼

Vol.6. 이사장 칼럼

create[비서실] access_time2014.09.02 08:23 visibility8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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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칼럼 [이사장]

 

13만 4천 155명 청소년 범죄사범과 사춘기 청소년 교육

 

지난 10월 21일 법무부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미래희망연대 노 철래 의원(비례)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청소년 범죄사범은 총 9만2643명이었으나, 지난해는 13만4155명으로 2006년에 비해 45%증가했다. 특히 성 폭행 범, 마약사범 등 흉악범죄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최근, 서울 하 왕십리에서 10대 청소년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가족 4명을 방화로 살해한 사건이 있었고, 지난 6월 12일에 발생한 여중생 살인사건은 가출한 6명의 청소년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최 모 양의 집에서 지내다가 친구인 김 모 양이 자신들에 대한 험담을 했다는 이유로 때려서 살해한 후 그 시체를 훼손하여 한강에 유기하였다. 유기한지 5일 만에 한강에 떠오른 시신을 경찰이 수습하고 수사를 벌여 범행에 가담한 6명 모두를 검거하였다.

2009년 기준 우리나라 총 청소년(9-24세)인구가 1천38만 4천명인 점을 감안하면 청소년 85명중의 한명은 범죄로 인하여 기소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보통의 경우 공식적인 통계치보다 현실에서는 그 정도가 더 심각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청소년 범죄와 관련된 경우에는 쉬쉬하고 지나가는 경우나 서로 협의·합의하여 지나가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청소년 범죄에 대한 염려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범죄의 건수가 늘어나는 것에만 주목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범죄의 내용이나 수법이 점점 흉포화 되어가는 것에 우려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범죄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데 크나큰 우려가 있는 것이다. 6명의 청소년이 친구를 구타하여 살해 후 한강에 유기하고도 전혀 심각하게 여기지 못하고 여전히 조사과정에서 희희낙락 했다는 기사에서 우리는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가슴과 감정이 없는 아이들, 오로지 쾌락과 육체적인 즐거움만 탐닉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들의 미래에 대하여 큰 우려를 금할 길이 없다.

이런 와중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성적취향이 다른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의 동성애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검토하고 있는 모양이다. 소수자의 인권도 소중하지만 다수자의 인권은 더 중요하지 않는가? 표현의 자유라는 거창한 구호아래 우리 사회는 세계 어떤 나라 보다 더 성에 대하여 개방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다. 인터넷을 열면 온갖 성인물이 넘쳐흐른다. 초등생들이 ‘여친’이네 ‘남친’이네 하면서 이성교제를 당연시하고 중고생이 되면 마치 이성교제의 경험이 없는 것이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하는 양 취급되고 있다. 언론과 매체들은 혼전 성관계가 마치 당연하고 혼전 순결을 지키는 것은 보수·수구 골통들이나 하는 구시대적인 것처럼 매도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이성교제나 성경험을 큰 영웅적 행동으로 인식하고 점점 대범해지고 있고 성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서 피해를 당하는 수많은 청소년과 그 가족들의 인권은 어디로 갔는가? 사정이 이러할진대 여기에다가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동성애자 까지 보호하는 법률을 제정한다면 이 나라와 사회의 운명이 어찌될 것인가?

글로벌 선진교육을 표방하고 기독교 교육을 표방하는 우리교육의 현장에서 좀 더 성서적인 가치관을 교육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함을 다시 되새겨 본다. 초등학교 때 이미 너무 많이 왜곡된 성에 대하여 알아버린 학생들을 성서적인 가치로 교육한다는 것이 어마나 어려운지 교육현장에 있어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더군다나 가장 민감한 사춘기에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왜곡된 성에대한 가치들과 입장들은 아주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 내기 십상이다. 그러나 다행히 기숙사 생활을 통하여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청소년들의 적나라한 생활형태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만약 가정에서 양육되고 있었다면 드러나지 않을 부분까지 다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학교의 규칙과 원칙에 의하여 아픔을 동반하지만 지도되어지고 교정되어지는 기회를 갖는다는 점이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신체의 변화와 심경의 변화로 인한 주체 할 수 없는 행동들이 늘 상식에 부합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럴 때에 근접 지도나 구체적인 상담이나 생활지도가 결핍되면 이는 자칫 끔직한 범죄의 양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때로 학부모님들은 GVCS와 같은 기독교학교에서 어째서 학생들이 싸움을 하고, 훔치기도 하고, 시험부정도 하고, 술 담배를 하고, 성적인 문제를 만들기도 하는가 하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청소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 어디에도 문제가 없는 곳은 없다. 그들은 시한폭탄이다. 그들은 아직 뚜렷한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결코 사려 깊게 원칙에 많고 상식에 맞는 생각과 행동만을 할 수 없고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이다. 어떤 생각은 왜 바르지 않으며 어떤 행동은 왜 해서는 안 되는지. 우리에게 있어서 인생은 무엇이며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 무엇인지. 육체의 즐거움과 쾌락을 주신 목적은 무엇이며 어떻게 사용하여야 하는지 등등 가르치고 정립하여야 할 일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러나 정작 언론과 매체들은 너무나 다른 가치를 심어준다. 영화에 나오는 깡패들의 삶을 정의롭고 멋진 삶으로 그리기도 하고, 육체의 쾌락을 즐기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순결을 지키는 것은 종교적 도덕적 굴레에 불과하고 그것을 벗어버리는 것이 마치 큰 자유를 얻는 것이라도 되는 양 가르친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상업적 목적이 최우선이다. 마치 자신들이 기존의 가치와 체제를 개혁하고 저항하는 선구자인 것처럼 하며 청소년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아 시청률과 구독률을 높이고 영향력을 확장하여 경제적인 이득과 사회적 힘을 얻고자 함이다. GVCS는 이러한 도전들 앞에 놓인 학생들을 성서적 가치에 굳게 서있는 하나님의 인재로 교육하는 일에 목표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 범죄율은 GVCS의 교육이 확대될수록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